돌빛 새벽의 장대한 그림자, 프라테사루스 이느겐스
프라테사루스의 갈래 속에서 이 이름은 더 크고 깊은 숨을 품은 존재처럼 다가옵니다. 1856년 Rütimeyer가 건넨 이 호명은, 오래된 지층 위를 천천히 되울리는 메아리처럼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노리아절의 공기는 길고 서늘했고, 대지는 아직 젊은 균열과 흙의 온기를 함께 품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Aargau에서 Franche-Comte, Bayern으로 이어지는 넓은 땅에는 프라테사루스 계통의 발걸음이 서로 다른 리듬으로 스며들며 하나의 풍경을 이루었습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같은 프라테사루스 계통으로 묶이더라도, 몸을 운용하는 방식과 머무는 전략은 한 줄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어떤 갈래는 체형의 쓰임을 달리하며 위험을 흘려보냈고, 또 다른 갈래는 서식의 결을 바꿔 하루를 지켜 냈을 것입니다. 프라테사루스 이느겐스라는 이름은 그 고단한 선택의 한 지점을 조용히 증언하는 모습입니다. 플라테오사우루스와 프라테사루스 이느겐스가 나눈 공존의 거리 이 이름 곁에서 같은 시공간의 맞상대가 또렷이 드러나지 않아도, 생태계의 무대는 늘 균형을 찾아 전개됩니다. 같은 계통의 플라테오사우루스는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동선과 터전을 어긋나게 나누며 평원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하여 긴장은 함성보다 거리 조절로 이어지고, 공존은 한 걸음 비켜서는 감각으로 유지됐습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프라테사루스 이느겐스를 가리키는 흔적은 무척 희귀하여, 오히려 지구가 끝내 감추어 둔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이 적은 표본성은 부족함이 아니라, 아직 펼쳐지지 않은 페이지가 남아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미래의 발굴은 이 이름의 숨결을 더 선명히 밝혀, 노리아절의 바람을 다시 우리 곁으로 데려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