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바람에 새긴 작은 이빨, 리코리누스 파르비덴스
브룸이 붙인 이 이름은 오래된 지층의 숨결을 조용히 깨웁니다. 리코리누스라는 혈통의 결 안에서, 파르비덴스는 작은 흔적으로도 긴 시간을 울리게 하는 존재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이 짧은 이름 하나가 사라진 생존의 방식 전체를 대신해 속삭이는지도 모릅니다.
고대의 풍경이 열리다 헤탕절의 공기는 아직 거칠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Bethlehem과 Mt. Fletcher의 땅은 같은 계통의 숨소리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리코리누스라는 이름은 한 점의 뼈를 넘어, 바람과 흙과 발걸음이 겹치는 장면으로 전개됩니다. 시간은 멀어졌지만 그 무대의 온도는 여전히 손끝에 남는 모습입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같은 리코리누스 계통 안에서도 체급과 동선, 방어 운용은 미세하게 갈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차이는 우연한 장식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고 다음 계절로 건너가기 위한 고단한 선택이었겠습니다. 비로소 몸의 운용 방식 하나하나가 생존의 문장으로 이어지며, 파르비덴스의 자리도 그 문장 속에서 조용히 또렷해집니다. 리코리누스 아느구스티덴스와 리코리누스 파르비덴스, 같은 무대의 공존 리코리누스 아느구스티덴스는 헤탕절의 Bethlehem과 Mt. Fletcher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같은 계통의 또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파르비덴스와 그 이름이 같은 시공간에 나란히 섰다고 서두르지 않더라도, 두 갈래의 전략은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며 비켜가는 생태의 균형을 그리게 합니다. 빼앗는 힘보다 나누는 거리감이 오래 살아남는 법이었다는 감각이 이 계통의 그림자에서 은은히 번져옵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파르비덴스는 지구 역사가 쉽게 열어 보이지 않는 희귀한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손에 쥔 조각이 적을수록 상상은 가벼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무거운 침묵으로 우리를 오래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미래의 발굴은 빈칸을 메우는 일이 아니라, 오래 잠들어 있던 한 장면을 다시 숨 쉬게 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