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반구의 느린 천둥, 안타르크토사루스 익만냐누스
1927년 Huene가 건넨 이 이름은, 오래 잠든 대지의 숨결을 깨우는 낮은 종소리처럼 울립니다. 안타르크토사우루스 계통의 결을 지닌 이 존재는 여전히 시간의 강을 건너, 거대한 침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엘 쿠이와 소리아노의 땅에서는 늦은 백악기의 바람과 먼지가 번갈아 평원을 스치고, 비로소 생명의 무대가 천천히 열렸습니다. 그 장면은 캄파니아절에서 마스트리흐트절, 83.6 ~ 66 Ma에 이르는 긴 시간 속에서 겹겹의 계절로 이어집니다. 그리하여 한 번의 발걸음마저 한 시대의 호흡처럼 길게 남습니다.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 기본 체형과 몸을 지키는 구조는 단단함을 과시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오래 다듬어진 선택으로 읽힙니다. 더 이른 코니아시안절의 안타르크토사루스 기간트스를 함께 떠올리면, 닮은 뿌리에서도 행동과 자원 분배의 결은 다르게 뻗어 갔을 가능성이 그려집니다. 어쩌면 생존은 크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하루를 어떻게 나누어 쓰느냐의 문법으로 전개됩니다. 라프라타사루스 아라카니쿠스와 안타르크토사루스 익만냐누스, 같은 무대의 공존 캄파니아절의 엘 쿠이 권역에서 라프라타사루스 아라카니쿠스와 나란히 있던 순간들에는,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동선을 비켜 주는 질서가 먼저 있었을 것입니다. 소리아노까지 이어진 같은 무대에서 두 계통은 출발점부터 다른 몸의 문법을 지녔고, 그 차이는 충돌보다 자리 나눔의 지혜로 빛났습니다. 그리하여 평원은 한쪽의 승패가 아니라 여러 거인의 호흡이 겹쳐 유지되는 균형으로 남습니다.
지층이 숨긴 질문들 남겨진 흔적이 두 점뿐이라는 사실은 부족함이 아니라, 지구가 아주 신중하게 건넨 희귀한 증언입니다. 여전히 열리지 않은 지층의 안쪽에서 안타르크토사우루스 익만냐누스의 하루는 반쯤 접힌 장면처럼 우리를 기다립니다. 비로소 다음 발굴의 손길이 그 페이지를 넘기는 날, 우리는 그 거대한 걸음의 리듬을 한층 또렷하게 듣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