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백악의 숨결, 마준가사우루스
Depéret가 1896년에 이 이름을 건넸을 때, 마준가사우루스는 이미 오래전 황혼 속으로 걸어 들어간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돌 속 침묵 위에 작은 불빛을 켜고, 사라진 포식자의 체온을 오늘의 상상으로 다시 데려옵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마스트리흐트절의 대지는 멸종 직전의 긴 숨을 품은 채, 느리게 흔들리는 생명의 무대를 펼쳐 보입니다. 그 장면은 72.1 ~ 66 Ma의 시간층 사이에서, 끝을 향해 달리면서도 끝내 살아남으려는 의지로 전개됩니다. 바람은 낮게 흐르고, 포식자의 그림자는 날이 갈수록 더 길어졌습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마준가사우루스의 몸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수많은 실패를 견디며 다듬어진 생존의 문장처럼 그려집니다. 굶주림과 기회의 간격이 좁아질수록 그 구조는 더 절제되고 정확해졌으며, 어쩌면 그 냉정함이 마지막 백악기의 하루를 버티게 했습니다. 포식자의 삶은 거칠어 보이지만, 실은 타이밍을 기다리는 깊은 인내의 모습입니다. 오르니토미무스 베록스와 마준가사우루스, 같은 무대의 공존 같은 마스트리흐트절을 건너던 오르니토미무스 베록스와 펙티노돈 박케리는, 마준가사우루스와 포식의 긴장을 나누면서도 서로 다른 땅의 결을 따라 움직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는 정면으로 부딪히는 전쟁이라기보다, 사냥의 시간과 길목을 조심스럽게 비켜 두는 생태의 예법에 가까웠습니다. 비로소 경쟁은 파괴가 아니라, 같은 시대를 견디기 위한 거리의 기술로 읽힙니다.
지층이 숨긴 질문들 이 존재를 둘러싼 흔적은 24차례의 화석 만남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여전히 많은 장면은 지층 아래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특히 발걸음의 흐름과 접근의 결은 아직 희미하여, 우리는 단정 대신 가능성의 언어로 그 밤을 더듬게 됩니다. 그리하여 다음 발굴은 빈칸을 메우는 일이 아니라, 오래된 세계가 스스로 문을 여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