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새긴 첫 걸음, 피사노사루스 메르티
피사노사루스 메르티는 트라이아스기의 이른 숨결 속에서, 아직 세계의 질서가 완전히 굳지 않았던 때를 건너온 이름입니다. 1967년 Casamiquela가 붙인 이 학명은 한 생명의 몸짓을 넘어, 오래된 땅이 간직한 리듬을 조용히 깨웁니다. 그리하여 이 존재는 거대한 영웅이라기보다, 시작의 계절을 견딘 단단한 호흡으로 다가옵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오늘의 아르헨티나 General Lavalle에 닿으면, 지층은 카르니아절의 공기를 품은 채 237 ~ 228 Ma의 깊은 저편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메마름과 생동이 교차하던 평원 위로, 작은 움직임 하나도 생존의 문장처럼 또렷했을 모습입니다. 어쩌면 그 땅의 바람은 당시에도 지금처럼, 먼저 지나간 발걸음의 온도를 오래 붙들고 있었겠습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피사노사우루스라는 계통의 선택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버티고 물러서고 다시 나아가기 위한 생활의 기술로 읽힙니다. 남겨진 뼈의 인상 속에서 골격 비율과 무게중심을 다루는 방식은, 같은 압력 앞에서도 다른 길을 찾게 한 조용한 결단으로 전개됩니다. 비로소 몸은 무기가 아니라 하루를 통과하기 위한 섬세한 약속이 됩니다. 피사노사루스 메르티, 경쟁 대신 공존을 택한 리듬 같은 카르니아절, 같은 아르헨티나의 무대에는 크로모기사루스 노바시와 에드로마스 무르피도 함께 숨 쉬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각기 다른 골격 비율과 무게중심 운영으로 동선을 나누며 평원의 질서를 조율했을 모습입니다. 그래서 긴장은 파괴가 아니라, 같은 하늘 아래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는 정교한 균형으로 그려집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피사노사루스 메르티를 붙드는 화석은 단 1건, 지구 역사가 쉽게 내어주지 않은 희귀한 증언입니다. 적음은 공백이 아니라, 아직 펼쳐지지 않은 장면을 남겨 둔 시간의 배려처럼 느껴집니다. 여전히 땅속 어딘가에서 다음 조각이 깨어난다면, 이 조용한 이름은 더 넓은 생태의 합창으로 다시 이어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