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둥지를 지키는 낮은 심장, 오비랍토르 피로케라톱스
오비랍토르 피로케라톱스는 오해의 이름을 지나, 끝내 돌 위에 남은 온기로 자신을 말해 주는 존재입니다. 한때 알을 훔친 그림자로 불렸지만, 비로소 알을 품은 자세가 드러나며 이 생의 표정은 완전히 다르게 읽히게 됐습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캄파니아절에서 마스트리흐트절로 이어지던 83.5 ~ 70.6 Ma, 몽골 Omnogov의 바람은 모래와 침묵을 길게 밀어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그 땅의 지층은 누가 먼저 달렸는지보다, 누가 끝까지 버텼는지를 천천히 들려주는 무대가 됩니다. 1924년 오스본이 이름을 붙인 뒤에도, 그 이름 곁에는 여전히 시간이 덧입힌 숨결이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 이 오비랍토르는 힘을 과시하기보다, 알 곁을 지키는 자세로 생존의 문장을 써 내려간 모습입니다. 몸을 낮추고 품을 둥글게 만드는 선택은 어쩌면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단단한 방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형태는 단순한 골격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잇기 위한 긴 인내로 읽힙니다. 갈리미무스 불라투스와 오비랍토르 피로케라톱스가 나눈 공존의 거리 같은 시기, 같은 Omnogov에서 갈리미무스 불라투스는 더 넓은 거리 감각으로 평원을 가르며 지나갔고, 오비랍토르는 다른 리듬으로 하루를 건넜습니다. 사로로푸스 아느구스티로스트리스 또한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만, 처음부터 다른 체형의 철학으로 동선을 나누었을 가능성이 그려집니다.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서로의 결을 알아보고 비켜 가는 장면, 그 섬세한 균형 속에서 생태계의 긴장이 조용히 전개됩니다.
미래가 채워야 할 페이지
남겨진 흔적이 단 한 차례라는 사실은 빈칸이 아니라, 지구가 아주 드물게 건네는 귀한 속삭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존재의 침묵은 끝이 아니라, 아직 열리지 않은 지층의 문 앞에서 오래 반짝이는 여백입니다. 언젠가 새로운 발굴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이 조용한 보호자의 하루를 더 선명하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