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에 독빛 숨을 남긴 순례자, 베네노사루스 디크로케
베네노사루스 디크로케는 이름만으로도 메마른 평원 위를 오래 건너온 생의 무게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쩌면 이 존재는 거대한 몸을 앞세우기보다, 시간의 틈을 견디는 방식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 온 모습입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미국 Grand의 지층은 바레미아절의 바람과 압티아절의 먼지를 한 겹씩 눌러 담아, 느린 장면처럼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그 장면은 129.4 ~ 122.46 Ma의 길고 낮은 파동 속에서 이어졌고, 비로소 한 생의 흔적이 조용히 떠오릅니다. 2001년 Tidwell 외의 이름을 지나 오늘에 닿은 호명은, 오래 잠들었던 시간을 다시 숨 쉬게 합니다.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 베네노사루스라는 갈래 안에서 이 공룡의 몸은 화려한 과시보다 버티는 균형을 택한 듯 그려집니다. 골격 비율과 무게중심을 다루는 방식은 하루를 건너기 위한 신중한 문법으로 읽히며, 그리하여 움직임 하나에도 생존의 계산이 아닌 결심이 배어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뼈의 침묵을 듣지만, 그 침묵은 살아남으려는 의지로 충분히 따뜻합니다. 가스토냐 로르롐크으힌네와 베네노사루스 디크로케, 같은 무대의 공존 같은 Grand의 같은 시기에는 가스토냐 로르롐크으힌네와 프라니콕사 베네니카의 그림자도 나란히 지나갑니다. 셋의 길은 정면으로 부서지기보다 서로의 리듬을 살피며 비켜 갔고, 먹이와 동선을 나누는 섬세한 거리 두기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이 평원은 승패의 무대가 아니라, 각자의 무게중심이 공존을 배워 가는 긴 호흡으로 전개됩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남겨진 흔적이 단 한 줄이라는 사실은 빈칸이 아니라, 지구가 아주 드물게 허락한 서명처럼 다가옵니다. 희귀한 증거일수록 상상은 더 멀리 가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계절과 발자국이 지층 아래에서 천천히 우리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미래의 발굴이 한 조각 더 빛을 보탠다면, 이 조용한 서사는 더 깊은 숨으로 다시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