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저녁의 뿔, 케라토사루스 나시코르니스
케라토사우루스의 계보에 놓인 이 이름은, 사냥의 날카로움보다 오래 버텨 낸 시간의 결을 먼저 떠오르게 합니다. 1884년 Marsh가 붙인 호칭은 한 번의 명명이 아니라, 쥐라기 황혼을 건너온 숨결의 호명처럼 들리는 순간입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키메리지절에서 티토니아절로 이어지는 157.3 ~ 145 Ma의 대지에서는, 강줄기가 굽고 마른 바람이 층층의 흙을 쓸어 내리며 계절의 무게가 천천히 전개됩니다. 오늘의 미국 땅인 Fremont와 Mesa, Emery, 그리고 또 다른 한 자리까지, 지층은 같은 생의 발걸음이 넓은 평원을 오래 오갔음을 조용히 들려줍니다.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 이 존재의 몸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포식의 긴장 속에서 힘과 균형을 함께 붙들기 위해 다듬어진 선택의 결과로 그려집니다. 비로소 이름에 스민 뿔의 인상마저도 과시가 아니라 거리와 순간을 가르는 생존의 문법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한 번의 움직임은 공격만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아껴 둔 결심의 리듬으로 읽히는 모습입니다. 케라토사루스 나시코르니스, 경쟁 대신 공존을 택한 리듬 같은 시기, 같은 지역에서 브론토사우루스 엑스켈수스와 카마라사우루스 수프레무스의 흔적이 겹쳐 보일 때, 이 평원은 충돌의 무대보다 정교한 간격의 무대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포식의 압박과 회피의 감각은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서로의 자리를 비켜 주며, 하루의 동선을 다르게 접어 나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래가 채워야 할 페이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다섯 번의 흔적은 부족함이 아니라, 지구가 쉽게 열지 않은 서랍 같은 여백입니다. 여전히 잠든 층이 한 장 더 열리는 날, 케라토사루스 나시코르니스의 마지막 장면은 더 선명한 공기와 함께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