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결을 지닌 고요한 거인, 하프로칸토사루스 델프시
하프로칸토사루스 델프시라는 이름은 낮게 울리지만, 시간을 건너온 생명의 온도를 또렷하게 전해 줍니다. 1988년 McIntosh와 Williams가 남긴 이 명명은, 오래 잠들어 있던 존재를 오늘의 숨결로 다시 불러내는 장면처럼 다가옵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키메리지절의 대지는 깊고 느린 호흡으로 흔들렸고, 지금의 미국 Fremont에도 그 파문이 조용히 번져 갔습니다. 그 무대는 157.3 ~ 152.1 Ma의 긴 황혼 속에서 이어지며, 하플로칸토사우루스 계통의 발걸음이 지층 사이로 은은히 그려집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하프로칸토사루스 델프시는 같은 계통의 하프로칸토사루스 프리스쿠스와 골격의 큰 틀을 나누며, 생존을 위한 공통의 설계를 보여 줍니다. 비로소 차이는 체급과 식성, 이동의 결에서 갈라졌을 가능성이 크고, 그 미세한 갈림마다 하루를 버텨 내기 위한 고단한 선택이 포개졌던 모습입니다.
키메리지절의 하프로칸토사루스 델프시, 공존의 균형
같은 키메리지절, 같은 Fremont의 평원에는 브론토사루스 엑스켈수스도 함께 숨 쉬었고, 하프로칸토사루스 델프시는 그 곁에서 다른 리듬의 생존 방식을 키워 갔습니다. 또 다른 동시대 친족인 하프로칸토사루스 프리스쿠스와도 닮은 틀 위에 서로 다른 걸음의 간격을 두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거칠게 밀어내기보다 서로의 자리를 조심스레 비켜 가며, 한 생태계의 균형을 길게 지탱했을 듯합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남겨진 흔적이 단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지구 역사가 아주 드물게 건네는 희귀한 증언으로 읽힙니다. 어쩌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층위 어딘가에 하프로칸토사루스 델프시의 다음 장면이 접혀 있을지 모르며, 미래의 발굴은 이 서사를 더 깊고 따뜻하게 이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