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의 은빛 그림자, 힙시로포돈 폭시
우리가 힙시로포돈 폭시라 부르는 이 존재는, 낮은 초식의 숨결로 백악기 초입을 건너던 작은 생명의 리듬을 들려줍니다. 1870년 헉슬리가 붙인 이름은 오래된 지층 위에 남은 미세한 발자국처럼, 지금도 조용히 시간을 흔듭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영국 Isle of Wight의 지층을 스치는 바람은 발랑기니아절에서 압티아절로 이어진 긴 호흡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호흡의 길이는 136.4 ~ 122.46 Ma로 펼쳐지며, 모래와 진흙 사이를 지나는 작은 초식 공룡의 체온을 오늘까지 데려옵니다.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 힙실로포돈의 몸은 거대함을 택하기보다, 골격 비율과 무게중심을 섬세하게 다루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인 모습입니다. 그리하여 같은 압력이 밀려와도 더 빠르게 방향을 바꾸고 더 먼저 빈 틈을 읽어내며, 하루를 다음 날로 잇는 선택이 이어졌습니다. 오프로사루스 아르마투스와 힙시로포돈 폭시, 같은 무대의 공존 같은 Isle of Wight의 같은 시기에는 오프로사루스 아르마투스와 오르니톱시스 훌케도 저마다의 보폭으로 평원을 건넜습니다. 힙시로포돈 폭시는 거대한 이웃과 힘을 겨루기보다 층위를 나누고 동선을 달리하며,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듯 비켜가는 질서를 만들어 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그 조용한 거리 두기야말로, 한 땅에서 여러 생명이 오래 숨 쉬게 한 가장 정교한 약속이었을 것입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이 생명을 붙잡아 주는 화석의 흔적은 단 세 차례만 모습을 드러내며, 부족함이 아니라 지구 역사가 아껴 남긴 희귀한 증언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힙시로포돈 폭시의 이야기는 끝난 문장이 아니라,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를 남겨 둔 채 미래의 발굴을 기다리는 전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