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지층의 낮은 숨결, 난슈느고사루스 브레비스피누스
난슈느고사루스 브레비스피누스라는 호명은, 잊힌 대지에 다시 체온을 불어넣는 오래된 속삭임 같습니다. 그 이름은 거칠게 외치지 않고, 남중국의 늦은 백악기 하늘 아래에서 천천히 존재를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중국 광둥의 지층이 눅진한 시간을 품고 열릴 때, 풍경은 캄파니아절에서 마스트리흐트절로 길게 미끄러집니다. 그 시간의 폭은 83.6 ~ 66 Ma, 모래와 강바람이 번갈아 지배하던 긴 오후처럼 이어졌습니다. 비로소 이 땅은 한 생명의 체중과 발걸음을 받아내며, 사라진 세계의 공기를 지금까지 건네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 같은 난슁고사우루스 계통의 난슈느고사루스 보흐리니와 마주 세워 보면, 기본 골격의 틀은 서로 닮아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하여 차이는 체급과 먹이 선택, 이동 동선의 미세한 갈림으로 쌓였고, 하루를 버티기 위한 조용한 설계로 굳어졌습니다. 눈에 띄는 장식보다 오래 버티는 균형을 택한 몸은, 진화가 타협이 아니라 생활의 기술이었음을 증언합니다. 난슈느고사루스 보흐리니와 난슈느고사루스 브레비스피누스, 같은 무대의 공존 같은 시기 같은 권역에서 이름이 함께 떠오르는 프로토케라톱스 헬레니코리누스는, 경쟁자이기보다 서로의 거리를 재는 이웃에 가까웠습니다. 난슁고사우루스 계통과 프로토케라톱스 계통은 애초의 체형과 방어 구조가 달랐기에, 정면의 충돌보다 동선을 나누는 지혜가 먼저 전개됩니다. 어쩌면 한쪽이 낮은 식생을 훑고 다른 쪽이 다른 틈을 고르며, 같은 평원을 조금 다른 리듬으로 살아냈을 것입니다.
미래가 채워야 할 페이지
이 존재가 남긴 화석 흔적은 단 한 점, 그래서 빈약함이 아니라 지구가 끝내 감추어 둔 희귀한 증언으로 남아 있습니다. Dong이 1979년에 이름을 붙인 뒤에도 이야기는 닫히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은 침묵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여전히 광둥의 지층 어딘가에는 다음 장면이 잠들어 있으며, 미래의 삽끝이 닿는 순간 서사는 다시 숨을 고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