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갑옷 정원사, 노도케파로사루스 키르트란덴시스
노도케파로사우루스 키르트란덴시스라는 이름은, 땅의 떨림을 먼저 듣고 삶의 속도를 조율하던 존재를 떠올리게 합니다. 1999년 Sullivan이 붙인 이 이름은 한 생명의 윤곽을 넘어, 오래된 평원에 남은 인내의 문장을 다시 펼쳐 보입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지금의 San Juan에 닿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면, 캄파니아절의 열기와 마스트리흐트절의 긴 그림자가 한 지층에서 천천히 포개집니다. 그 시간의 폭은 83.5 ~ 70.6 Ma, 짧지 않은 계절의 연쇄가 모래와 진흙 사이를 오가며 생명의 호흡을 눌러 담던 무대였습니다. 비로소 그 풍경은 정적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거리를 재던 발걸음으로 가득해집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노도케파로사루스라는 계통의 몸짓은 빠른 돌진보다 버티는 방식을 먼저 세운 선택으로 읽힙니다. 그리하여 이 생명은 열린 평원에서 움직임 하나에도 방어의 리듬을 실었고, 하루를 건너는 일 자체를 정교한 기술로 바꾸어 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느려 보이는 자세조차 시간을 자기 편으로 돌리기 위한 가장 단단한 설계였는지도 모릅니다.
노도케파로사루스 키르트란덴시스가 남긴 공존의 결
같은 San Juan의 하늘 아래, 아라모사루스 산줘넨시스의 거대한 그림자가 먼저 지나가고 노도케파로사우루스는 한 걸음 늦춘 동선으로 평원을 나누어 썼던 모습이 그려집니다. 또 다른 이웃 오르니토미무스 엗몬토니쿠스가 민첩한 리듬으로 공간을 가르면, 이쪽은 속도보다 방어를 앞세운 호흡으로 자리를 지켰을 가능성이 큽니다. 서로는 같은 계절을 살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았고, 바로 그 어긋남이 생태계의 균형을 오래 붙들었을 것입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지금 우리 손에 닿는 것은 여섯 번 포착된 흔적이지만, 그 숫자는 침묵이 아니라 아직 열리지 않은 장면의 문턱처럼 남아 있습니다. Sullivan이 이름을 붙인 뒤로도 지층은 말을 아껴 왔고, 그래서 이 공룡의 하루는 여전히 절반쯤 안개 속에서 전개됩니다. 그러나 다음 발굴의 새벽이 오면, 오래 눌려 있던 발걸음의 방향과 숨결의 온도가 조금 더 선명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