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위에 새긴 이름
바람의 긴 울림, 파라사로로푸스 투비켄. 캄파니아절에서 마스트리흐트절로 넘어가던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이 이름은 늦은 백악기의 공기를 길게 흔드는 메아리처럼 남아 있습니다.
고대의 풍경이 열리다 지금의 미국 San Juan 일대가 넓은 평원과 물길의 숨으로 젖어 있던 때, 시간은 83.5 ~ 70.6 Ma의 막을 천천히 펼쳐 보입니다. 그리하여 캄파니아절의 빛은 마스트리흐트절의 기류와 맞물리고, 초식의 거대한 걸음은 계절을 따라 유순하게 이어졌습니다. 1931년 Wiman이 붙인 이름은, 그 오래된 장면을 오늘의 우리 곁으로 조용히 데려오는 불빛입니다.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 파라사우롤로푸스 계통 안에서의 삶은 힘의 과시보다, 체형을 어떻게 쓰고 어느 자원을 언제 택할지에 대한 섬세한 선택으로 전개됩니다. 어쩌면 같은 식물을 마주해도 움직이는 시간과 머무는 자리를 달리하며, 하루의 안전을 조금씩 넓혀 갔을 것입니다. 그 모든 변화는 거창한 승리담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몸에 새긴 조용한 문법이었습니다. 파라사로로푸스 투비켄, 경쟁 대신 공존을 택한 리듬 San Juan의 같은 시기에는 파라사로로푸스 키르토크리스타투스가 나란히 존재했고, 서로의 기척을 읽으며 평원을 건넜을 모습입니다. 또한 같은 캄파니아절의 파라사우롤로푸스 계통은 Alberta까지 이어져, 한 계통 안에서도 서식 전략이 다르게 갈라지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이들은 거칠게 밀어내기보다 먹이와 이동의 결을 나누며, 서로의 자리를 존중해 비켜 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이 존재를 전하는 흔적은 네 점으로 남아, 끝맺음보다 더 깊은 여운을 우리 앞에 놓아 둡니다. 비로소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계절의 이동과 무리의 습성을 조심스레 상상하게 됩니다. 여전히 지층은 다음 장면을 품고 있으며, 미래의 발굴은 파라사로로푸스 투비켄의 숨결을 한층 선명하게 들려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