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같은 침묵의 순례자, 파노프로사루스 미루스
파노프로사루스 미루스라는 이름은, 오래된 지층 위를 낮고 무겁게 지나던 존재의 숨결을 오늘로 데려옵니다. 1919년 Lambe가 남긴 호명은 한 번의 명명이 아니라, 사라진 계절의 체온을 건네는 긴 메아리처럼 들립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지금의 캐나다 Alberta가 훨씬 거대한 시간의 호흡 속에 잠겨 있던 때, 이 존재의 발걸음은 캄파니아절에서 마스트리흐트절로 이어졌습니다. 83.5 ~ 70.6 Ma의 폭은 짧은 장면이 아니라, 풍경이 천천히 결을 바꾸는 긴 서사로 펼쳐집니다. 바람과 흙, 물과 그림자가 겹치던 그 무대에서 파노프로사우루스의 하루도 조용히 축적되었을 것입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같은 압력 아래에서도 살아남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었고, 파노플로사우루스 계통은 자신만의 몸의 문법을 다듬어 온 듯합니다. 골격 비율과 무게중심의 운용이 갈라졌다는 흔적은, 더 빠른 승부보다 오래 버티고 현명하게 비켜 가기 위한 선택으로 읽힙니다. 그리하여 그 형태는 단단한 구조가 아니라, 시간 앞에서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조용한 결심처럼 다가옵니다.
파노프로사루스 미루스가 남긴 공존의 결
같은 캄파니아절의 Alberta에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켄트로사우루스 아페르투스는 파노프로사우루스 미루스와 한 무대를 나눴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 공존은 소란스러운 충돌보다, 서로의 리듬을 읽고 동선을 나눠 쓰는 정교한 균형으로 전개됩니다. 누군가는 넓은 공간을, 누군가는 다른 층위를 택하며, 같은 하늘 아래 각자의 생존을 이어 갔던 모습입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이 존재를 가리키는 화석 흔적은 단 두 건이지만, 그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지구가 쉽게 내주지 않은 희귀한 증언입니다. 여전히 Alberta의 지층 어딘가에는, 파노프로사우루스 미루스의 하루를 더 또렷하게 들려줄 장면이 잠들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은 종결이 아니라, 미래의 발굴이 천천히 이어 쓸 다음 문장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