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초원을 지키는 왕관, 켄트로사루스 아페르투스
켄트로사우루스 아페르투스라는 이름은, 바람이 낮게 흐르는 오래된 평원 위에 조용히 놓인 왕관처럼 들립니다. 1905년 Lambe가 붙인 이 이름은 한 생명의 윤곽만이 아니라, 캄파니아절의 숨결을 오늘까지 건네는 문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지금의 캐나다 앨버타가 젊은 대륙의 결을 드러내던 때, 캄파니아절에서 마스트리흐트절로 이어지는 83.6 ~ 70.6 Ma의 시간은 천천히 쌓이고 또 갈라졌습니다. 그 층위 사이에서 켄트로사우루스 아페르투스는 흙과 식물의 냄새를 따라 계절을 건넜고, 그리하여 먼 과거의 공기가 우리 곁에 다시 번집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센트로사우루스라는 계통 안에서 이 공룡의 몸은 화려함보다 지속을 택한 문장처럼 읽힙니다. 초식의 삶은 늘 온화해 보이지만, 하루하루의 섭식과 이동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비로소 그 고단한 반복이 종의 형태를 다듬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 존재의 윤곽은 우연한 장식이 아니라 오래 버티기 위해 고른 생존의 문법으로 전개됩니다. 람베사루스 람베와 켄트로사루스 아페르투스, 같은 무대의 공존 같은 앨버타의 같은 시기에는 람베사우루스 람베와 스티라코사우루스 알베르텐시스도 초원을 나누어 걸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모두가 초식을 택한 세계에서 그들은 정면으로 소모하기보다, 어쩌면 먹이 식생과 이동의 결을 달리하며 서로의 자리를 존중해 비켜갔을 모습입니다. 여전히 몇몇 동선은 안개처럼 남아 있지만, 그 긴장은 전쟁이 아니라 공존의 기술로 읽힙니다.
지층이 숨긴 질문들 이 종을 둘러싼 화석 흔적은 서른여덟 번이나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완전한 침묵보다 더 깊은 질문을 건넵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이 수는, 밝혀진 장면들 사이에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 발굴의 순간마다 켄트로사우루스 아페르투스의 하루는 조금 더 선명해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