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남은 가는 이빨의 노래, 파로니코돈 아샤티쿠스
파로니코돈 아샤티쿠스는 거친 시간을 건너, 이름만으로도 메마른 평원의 숨결을 불러옵니다. 낮게 깔린 햇빛 아래 그 존재는 크게 외치지 않고, 스쳐 지나간 생존의 결을 조용히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이름은 한 종의 호칭을 넘어, 오래된 계절의 떨림을 다시 일으키는 작은 파문으로 남습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오늘의 우즈베키스탄 나보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투로니아절에서 코니아시안절로 이어지는 93.5 ~ 89.3 Ma의 시간이 한 겹씩 열립니다. 먼지와 열기가 교차하던 그 무대에서 파로니코돈 계통의 발자취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또렷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리하여 이 서사는 거대한 군상이 아니라, 얇지만 깊은 흔적 하나가 품은 공기의 무게로 시작됩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파로니코돈라는 갈래가 선택한 몸의 문법은, 힘의 과시보다 이동과 방어의 우선순위를 정교하게 조율하는 쪽에 가까웠으리라 그려집니다. 비로소 몸의 형상은 장식이 아니라, 하루를 더 건너기 위해 다듬어진 생존의 문장처럼 읽힙니다. 어쩌면 그 조용한 설계 덕분에, 변덕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존재의 선을 가늘고 길게 이어 갈 수 있었겠습니다. 파로니코돈 아샤티쿠스, 경쟁 대신 공존을 택한 리듬 같은 나보이의 하늘 아래, 이테미루스 메둘라리스와 파로니코돈 아샤티쿠스는 같은 시절의 바람을 나누며 서로의 기척을 배웠을 것입니다. 또한 투라노케라톱스 타르다비리스가 같은 땅을 지나던 순간들에는, 처음부터 다른 체형 설계 철학을 지닌 생명들이 정면의 소모전보다 동선을 달리하며 균형을 맞추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긴장은 파괴의 언어보다 거리와 타이밍의 언어로 남고, 평원은 서로 비켜 서며 함께 지속되는 생태의 무대로 전개됩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이 종이 건네는 흔적은 단 한 건이기에, 부족함이 아니라 지구 역사가 오래 품어 온 희귀한 증언처럼 다가옵니다. 1995년 Nessov가 이름을 붙인 뒤에도 파로니코돈 아샤티쿠스는 모든 얼굴을 서둘러 내보이지 않은 채, 지층 깊은 곳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여전히 다음 발굴의 손길이 그 여백을 비출 때, 우리는 오래된 침묵이 사실은 가장 긴 이야기였음을 듣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