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모래에 새긴 이름, 투라노케라톱스 타르다비리스
투라노케라톱스 타르다비리스는 거친 바람이 스쳐 가는 대지 위에, 느리지만 단단한 생의 리듬을 남긴 존재입니다. 그 이름은 사라진 계절들 사이에서 끝내 버티어 낸 선택의 무게를 조용히 들려줍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Navoi 일대가 더 깊은 하늘과 마른 숨결을 품던 때, 무대는 투로니아절에서 코니아시안절로 이어지는 93.5 ~ 89.3 Ma에 펼쳐집니다. 지층은 바람과 발자국을 겹겹이 눌러 담고, 그리하여 이 작은 뿔공룡의 하루도 긴 시간의 결 안으로 스며듭니다. 우리가 듣는 것은 한순간의 소음이 아니라, 오래 식지 않는 생존의 맥박입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투라노케라톱스라는 계통의 몸은 화려함보다 견딤을 택한 설계로 읽히며, 어쩌면 그 단정한 균형이 가장 현실적인 방패였을 것입니다. 앞을 지키는 구조와 몸의 중심을 붙드는 자세는 도망보다 버팀, 과시보다 지속을 향한 선택으로 전개됩니다. 비로소 형태는 모양이 아니라 생활의 태도가 되고, 그 태도가 한 종의 시간을 연장했을지 모릅니다. 이테미루스 메둘라리스와 투라노케라톱스 타르다비리스, 같은 무대의 공존 같은 Navoi의 같은 시기에는 이테미루스 메둘라리스와 레브네소뱌 트란속샤나도 각자의 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계통에서 온 이웃답게 이동과 방어의 우선순위가 다르게 짜였고, 그래서 평원은 한 종이 독점하는 전장이 아니라 미묘한 거리 두기의 무대가 됩니다. 먹이를 나누었는지, 혹은 시선을 먼저 읽으며 비켜 갔는지, 그 장면은 충돌보다 조율에 가까운 풍경으로 그려집니다.
미래가 채워야 할 페이지
지금 우리 곁에 닿아 있는 화석 흔적은 6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가 오히려 상상의 문을 오래 열어 둡니다. 1989년 Nessov 외가 건넨 이름 이후에도 이야기는 완결되지 않았고, 여전히 몇 장의 계절은 지층 속에 잠든 모습입니다. 다음 발굴의 손길이 닿는 날, 투라노케라톱스 타르다비리스의 침묵은 또 한 번 살아 있는 장면으로 돌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