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의 가는 서명, 리카르되스테샤 아샤티카
리카르되스테샤 아샤티카라는 이름은 메마른 평원의 숨결을 조용히 데려옵니다. 1995년 네소프가 붙인 이 이름은, 깊은 지층 속 작은 흔적 하나를 긴 시간의 무대로 올려놓았습니다. 리카르되스테샤 계통의 결을 지닌 존재였고, 그 결은 살아남기 위한 침묵의 기술로 읽힙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오늘의 나보이로 이어지는 땅을 거슬러 올라가면, 투로니아절에서 코니아시안절로 미끄러지던 93.5 ~ 89.3 Ma의 공기가 천천히 열립니다. 강과 먼지가 교차하던 그 무대에서 한 걸음의 방향은 곧 하루의 생존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지층은 말이 적지만, 여전히 그 침묵으로 당시의 풍경을 들려주는 모습입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이 계통의 몸은 과시보다 이동과 방어의 균형을 먼저 익혔던 모습입니다. 비로소 생존은 빠름만이 아니라, 언제 숨고 언제 나아갈지를 고르는 리듬으로 전개됩니다. 그리하여 리카르되스테샤 아샤티카의 하루는 화려함보다 정확함에 가까웠으리라 그려집니다.
리카르되스테샤 아샤티카가 남긴 공존의 결
같은 투로니아절의 나보이에서 이테미루스 메둘라리스와 리카르되스테샤 아샤티카는 서로의 기척을 먼저 배웠을지 모릅니다. 투라노케라톱스 타르다비리스와도 같은 무대를 나누며, 정면의 충돌보다 동선을 살짝 비켜 내일을 남기는 선택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계통이 달랐기에 이동과 방어의 우선순위도 다르게 흐르고, 어쩌면 그 차이가 한 평원의 질서를 오래 붙들어 주었습니다.
미래가 채워야 할 페이지
이 이름을 떠받치는 흔적은 단 한 번 모습을 드러낸 희귀한 증거여서, 모자람이 아니라 지구 역사가 아껴 둔 여백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리카르되스테샤 아샤티카는 끝난 장면이 아니라 아직 펼쳐지는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같은 층위의 흙이 다시 열리면, 오늘의 침묵은 더 또렷한 숨결로 돌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