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위에 새긴 이름
사막의 첫빛을 짊어진 순례자, 타주다사루스 내미. 이 이름은 플린스바키아절의 바람을 등에 지고, 오래된 평원을 묵묵히 건너던 생의 박동을 들려줍니다.
고대의 풍경이 열리다 우아르자자트의 지층이 천천히 갈라지면, 플린스바키아절에서 토아르시안절로 이어진 시간이 비로소 숨을 고릅니다. 그 길이는 190.8 ~ 174.1 Ma, 모래와 바람과 계절의 결이 겹겹이 눌린 장대한 막으로 전개됩니다. 그리하여 타주다사우루스 내미의 발걸음은 한순간이 아니라 시대 전체를 건너는 장면으로 떠오릅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타주다사우루스 계통의 몸 틀과 방어 구조는 화려함보다 버팀을 택한 선택처럼 그려집니다. 살아남는다는 일은 빠른 승부가 아니라 긴 견딤이었고, 그 견딤이 몸의 윤곽마다 조용히 스며든 모습입니다. 어쩌면 이 형태는 평원의 압력과 먹이의 리듬에 맞춰 다듬어진, 느리지만 단단한 생존의 문장입니다.
플린스바키아절의 타주다사루스 내미, 공존의 균형
같은 우아르자자트의 시간대에서 베르베로사루스 랴스시쿠스와 타주다사우루스 내미는 서로의 자리를 밀어내기보다, 먹이와 동선을 가늠하며 비켜 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출발한 계통이 달랐기에 몸의 쓰임과 방어의 방식도 다른 결을 띠었고, 그 차이가 오히려 평원의 균형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한편 에마사루스 에르느스티는 같은 플린스바키아절을 살았지만 로스토크의 다른 무대에 서 있었고, 같은 시대의 하늘 아래 서로 다른 길이 나란히 이어졌습니다.
미래가 채워야 할 페이지
이름을 남긴 흔적이 단 두 차례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공백이 아니라, 지구 역사가 아껴 둔 희귀한 장면에 가깝습니다. Allain 외가 2004년에 학명을 세운 뒤에도 타주다사우루스 내미를 둘러싼 침묵은 여전히 깊고 온화합니다. 그래서 다음 발굴의 순간마다 우리는 잃어버린 답을 좇기보다, 아직 열리지 않은 서사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를 기다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