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등줄기에 이름을 새긴 순례자, 바자다사루스 프로누스피낙스
메마른 평원을 건너는 긴 호흡처럼, 바자다사우루스 프로누스피낙스라는 이름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 울림은 한 생명이 시간을 견디며 남긴 체온처럼, 오늘의 우리 곁까지 천천히 번져 오는 모습입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지금의 아르헨티나 Neuquen이라 불리는 땅에서는, 베리아스절에서 발랑기니아절로 이어진 145 ~ 132.9 Ma의 계절이 아직도 흙냄새처럼 맴돕니다. 낮은 바람과 거친 지면 사이로, 이 공룡의 자취는 큰 소리 대신 깊은 여운으로 시대의 공기를 들려줍니다. 비로소 그 풍경은 숫자가 아니라, 오래 눌린 시간의 무게로 우리 앞에 열립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바야다사우루스 계통의 몸은 장식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선택의 문장으로 읽힙니다. 골격 비율과 무게중심을 다루는 방식은 같은 압력 앞에서도 다른 길을 찾게 했고, 그리하여 하루를 버티는 기술이 따뜻한 지혜로 전개됩니다. 어쩌면 이 조용한 설계야말로, 거친 세계와 오래 화해하는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베리아스절의 바자다사루스 프로누스피낙스, 공존의 균형
같은 베리아스절, 같은 Neuquen의 무대에서 렌쿠팔 라티카다 또한 자신의 보폭으로 초원을 건넜고, 둘의 만남은 관계 신호가 말하듯 공존의 장면으로 그려집니다. 서로는 정면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골격 비율과 무게중심 운용의 차이를 살려, 겹치지 않는 동선으로 자리를 나누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같은 Neuquen 권역의 다른 시간층에서 비치는 테라느고스포두스 판데미쿠스의 흔적까지 더해지면, 한 땅에서도 머무는 구간과 이동의 결이 얼마나 다르게 펼쳐지는지 선명해집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갈리나와 동료들이 2019년에 이 이름을 세상에 올려놓았을 때,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넘치는 조각이 아니라 지구가 오래 간직한 희귀한 한 겹이었습니다. 단 한 번 모습을 드러낸 흔적은 빈칸이 아니라, 아직 열리지 않은 장면을 품은 베일처럼 느껴집니다. 여전히 Neuquen의 깊은 층은 다음 페이지를 아껴 쥔 채 잠들어 있고, 미래의 발굴은 이 서사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