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늦게 닿는 거목, 바로사루스 렌투스
1890년 Marsh가 불러낸 이 이름은, 서두르지 않는 생존의 리듬을 품은 채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바로사우루스 렌투스는 키메리지절에서 티토니아절로 넘어가는 대지의 호흡 위에, 오래 버티는 존재의 품격을 남긴 모습입니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지층의 결이 한 겹씩 열릴 때마다, 북아메리카의 공기는 157.3 ~ 145 Ma의 긴 저녁빛으로 번져 갑니다. 그리하여 Meade와 Crook, 그리고 Uintah로 이어진 땅에서는 한 시대가 끝나지 않은 채 천천히 다음 장으로 전개됩니다. 키메리지절의 이름은 한 시점을 가리키기보다, 풀잎과 먼지가 함께 나이를 먹던 시간의 무게로 들려옵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이 계통의 몸짓은 단숨에 승부를 거는 형태라기보다, 초식의 하루를 끝까지 지켜 내기 위한 인내의 구조에 가깝습니다. 길게 이어진 실루엣과 무게를 견디는 골격의 균형은, 더 많이 차지하기보다 더 오래 살아남으려는 선택으로 읽힙니다. 비로소 생존은 속도의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를 아끼며 계절을 건너는 조용한 결심이었을지 모릅니다. 바로사루스 렌투스, 경쟁 대신 공존을 택한 리듬 같은 시기 같은 권역에서 디프로도쿠스 로느구스의 그림자가 겹쳐올 때, 두 초식 거구는 같은 식물을 두고도 서로의 동선을 미세하게 비켜 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편 마르소사루스 비켄테시무스가 같은 무대에 드나들던 순간에는, 추격과 회피의 결이 달라 서로의 거리를 재는 긴장이 잔잔히 흘렀겠습니다. 어쩌면 이 평원은 승패의 땅이 아니라, 각자의 몸과 습성이 허락한 자리만큼을 나누어 쓰던 정교한 균형의 장소였습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지금 우리 손에 닿는 것은 네 차례의 화석 흔적뿐이지만, 그 적음은 공백이 아니라 지구가 일부러 남겨 둔 침묵의 여운입니다. Taxon 54166이라는 표식 뒤에는 아직 이어지지 않은 발자국들이 겹겹이 잠들어 있고, 그래서 질문은 끝나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발굴이 이 조용한 여백에 한 줄의 숨결을 더하면, 바로사우루스 렌투스의 하루는 더 또렷하게 되살아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