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빛 바람을 품은 고요한 행인, 크라스페도돈 론젠시스
크라스페도돈이라는 갈래에 놓인 이 이름은, 오래된 지층 위를 낮게 스치는 숨결처럼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1883년 Dollo가 붙인 이름은 한 생명의 전부를 다 말하지 않지만, 시간은 그 짧은 이름에 긴 울림을 실어 보냅니다.
고대의 풍경이 열리다 오늘의 벨기에 나무르에 닿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면, 산토니아절에서 마스트리흐트절로 이어지는 86.3 ~ 70.6 Ma의 대지에서 물기 어린 공기가 천천히 피어오릅니다. 그리하여 이 땅은 한순간의 장면이 아니라, 겹겹의 시간과 계절이 생존의 무대를 오래 밀어 올리던 거대한 들판으로 전개됩니다.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 몸의 세부는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지만, 크라스페도돈이라는 계통이 남긴 윤곽은 이동과 방어의 우선순위를 신중히 나눴던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로소 남아 있는 흔적은 화려한 과시보다 버티는 기술을 택한 진화의 문장을 들려주며, 고단한 선택들이 한 생명의 리듬을 만들었음을 조용히 증언합니다. 크라스페도돈 론젠시스, 경쟁 대신 공존을 택한 리듬 같은 산토니아절을 건너던 트루돈 포르모수스와 히파크로사루스 스테비느게리는 서로 다른 땅의 길을 따라가며, 같은 시대에도 다른 결의 생존법을 빚어 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맞서는 대신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며 비켜가듯, 저마다 다른 이동과 방어의 질서를 세워 하나의 균형을 오래 지켜 냈을 모습입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이름에 기대어 만질 수 있는 흔적이 단 한 차례만 남아 있다는 점은 부족함이 아니라, 지구 역사가 쉽사리 열어 보이지 않는 희귀한 장면입니다. 여전히 나무르의 지층 어딘가에는 크라스페도돈 론젠시스의 다음 문장이 잠들어 있고, 미래의 발굴은 그 조용한 빈칸을 따뜻하게 이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