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평원을 스치는 잔광, 디루비쿠르소르 픽케리느기
한 생의 이름은 때로 발자국보다 오래 남고, 디루비쿠르소르 픽케리느기는 그 조용한 여운으로 우리 앞에 섭니다. 거대한 포효 대신 젖은 바람의 결을 타고 지나가며, 사라진 계절의 호흡을 낮고 길게 들려주는 모습입니다.
고대의 풍경이 열리다 호주 Victoria의 땅이 차갑고 깊은 숨을 품던 시절, 시간은 압티아절에서 알비아절로 천천히 기울어 갑니다. 그 흐름은 122.46 ~ 109 Ma의 긴 물결로 이어지고, 지층은 비로소 한 주자의 지나간 온도를 가만히 품어 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돌의 결 사이에서, 멀어진 평원이 다시 눈앞에 번져 오는 장면과 마주합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디루비쿠르소르라는 계통의 몸 틀은 힘을 과시하기보다 하루를 끝까지 건너기 위한 절제의 문법으로 읽힙니다. 체형 프레임과 거리 운영 방식은 순간의 접근과 이탈을 정교하게 나누며, 살아남기 위한 조용한 선택으로 전개됩니다. 어쩌면 그 신중한 리듬이야말로 긴 계절을 견디게 한 가장 따뜻한 기술이었을 것입니다.
디루비쿠르소르 픽케리느기가 남긴 공존의 결
같은 압티아절의 Victoria에서는 렐리나사라 아미카그라피카와 칸타스사루스 인트레피두스 또한 저마다의 동선을 그렸습니다. 이들은 같은 먹이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체형 프레임과 거리 운영 방식의 차이로 접촉 구간을 달리 택했고,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며 비켜 갔을 가능성이 그려집니다. 그래서 이 평원의 긴장감은 충돌의 소음보다, 공존의 균형을 세밀하게 조율하던 침착한 호흡으로 남습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우리에게 닿은 흔적이 단 하나라는 사실은 빈자리가 아니라, 지구 역사가 드물게 허락한 희귀한 증언에 가깝습니다. 2018년 Herne 외가 이름을 붙인 뒤에도 이 존재의 이야기는 닫힌 결말이 아니라 천천히 열리는 페이지로 이어집니다. 여전히 지층 깊은 곳에는 말해지지 않은 계절이 잠들어 있고, 미래의 발굴은 그 침묵을 한 겹씩 깨워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