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관을 쓴 초원의 화음, 모조케라톱스
모조케라톱스라는 이름은 오래된 지층의 침묵 위에, 한 생명의 윤곽을 조심스레 불러냅니다. 2010년 Longrich가 붙인 이 이름은 단순한 명명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다시 들려온 낮은 맥박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종의 이름 앞에서, 사라진 세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고대의 풍경이 열리다 북아메리카의 흙냄새가 짙어지는 상상 속 들판에서, 캄파니아절의 앨버타는 느린 바람으로 시간을 넘겨줍니다. 그 곁에는 쥐라기 후기의 기억까지 겹쳐지며, 서로 다른 시대의 결이 한 지층의 주름처럼 포개지는 모습입니다. 비로소 모조케라톱스의 자리는 한 점이 아니라, 긴 세월이 밀어 올린 파문으로 전개됩니다.
진화가 남긴 고유한 문법
모조케라톱스의 몸은 화려함보다 생존을 먼저 배운 문장처럼, 앞쪽에 힘을 모으고 경계를 읽는 방식으로 다듬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초식을 택한 삶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같은 식물을 노리는 수많은 그림자 사이에서 하루를 지켜내야 하는 고단한 선택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신체의 균형은 싸우기 위한 과시가 아니라, 오래 버티기 위한 절제의 기술이었을지 모릅니다.
모조케라톱스가 남긴 공존의 결
기라프파티탄 브란캐와 켄트로사루스 아페르투스는 같은 초식의 층위에서 자원을 바라보았지만, 늘 같은 길목을 고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서로의 동선과 타이밍이 미세하게 어긋날 때, 평원은 충돌보다 회피와 양보의 리듬으로 더 오래 유지됩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관계는 전쟁의 함성보다, 한정된 푸른 먹이를 나누어 견디는 정교한 균형으로 그려집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이 종을 둘러싼 화석의 자취는 극도로 희귀하여, 지구가 일부러 남겨 둔 비밀의 봉인처럼 느껴집니다. 170959라는 분류의 표식은 작은 등불처럼 남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장면이 지층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여전히 다음 발굴의 삽끝이 닿는 순간, 모조케라톱스의 이야기는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다시 이어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