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빛 계곡의 느린 숨결, 페르리사루스 수스투텐시스
페르리사루스 수스투텐시스라는 이름은, 시대의 끝자락을 건너던 작은 숨결을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비로소 이 이름 앞에 서면, 거대한 이웃들 사이에서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생을 이어가던 존재가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 조용한 리듬은 여전히 늦은 백악기의 공기를 낮게 흔드는 모습입니다.
고대의 풍경이 열리다 지층의 문턱을 넘으면 마스트리흐트절 72.1 ~ 66 Ma의 바람이 먼저 스쳐 옵니다. 오늘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진 발걸음이 흙의 결을 따라 아직도 은은히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그리하여 시간의 무게는 풍경 위에 내려앉고, 생존의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조용히 전해집니다.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 페르리사루스의 몸은 골격 비율과 무게중심을 다루는 방식에서 이미 다른 선택을 품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압력 아래에서도 누군가는 밀어붙이고, 누군가는 돌아 나가듯, 이 공룡 역시 자신에게 맞는 길을 고집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 형태 하나하나는 강함의 과시보다 오래 버티기 위한 온화한 결심으로 전개됩니다. 트리케라톱스 프로르수스와 페르리사루스 수스투텐시스가 나눈 공존의 거리 같은 시기, 같은 권역에서 트리케라톱스 프로르수스와 안킬로사우루스의 그림자도 가까이 겹쳐졌습니다. 트리케라톱스 프로르수스와는 골격의 운용이 갈렸기에 먹이와 동선을 섬세하게 나누며 서로의 거리를 읽었을 듯합니다. 안킬로사우루스와도 이동과 방어의 우선순위가 달라, 정면의 충돌보다 자리를 존중하며 비켜가는 균형이 이어졌을 장면이 그려집니다.
잠들지 않은 여백
이 이름을 붙잡아 주는 화석은 단 한 건, 그래서 오히려 지구가 오래 감춰 둔 희귀한 증언처럼 다가옵니다. Arbour와 Evans가 2019년에 남긴 명명은 끝이 아니라, 이제 막 첫 장을 넘긴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여전히 잠든 뼈의 자리들은 공백이 아니라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여백이며, 미래의 발굴이 이 서사에 새로운 호흡을 더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