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하구의 푸른 순례자, 하드로사루스 풀키
하드로사우스 풀키라는 이름은 1858년, Leidy가 어둔 지층 위에 조용히 밝혀 둔 등불 같습니다. 그 이름은 한 종의 호칭을 넘어, 백악기 평원을 건너던 초식 생명의 박동을 오늘까지 데려온 문장입니다.
고대의 풍경이 열리다 캄파니아절에서 마스트리흐트절로 시간이 기울던 83.6 ~ 70.6 Ma, 오늘의 Monmouth와 Camden은 물기 어린 저지와 식생의 파문이 번지는 땅으로 펼쳐졌을 모습입니다. 하드로사우스 풀키는 그 축축한 계절의 결을 따라, 무리의 호흡에 맞춰 느리지만 단단한 하루를 이어갔습니다. 비로소 고요해 보이는 풍경 속에서도, 살아남는 일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으로 전개됩니다.
생존을 위한 정교한 설계 하드로사우루스 계열의 삶은 순간의 폭발력보다 오래 버티는 걸음을 택한 진화의 고백에 가깝습니다. 초식이라는 운명 안에서 하드로사루스 풀키는 식물 자원을 넓게 더듬고, 같은 터전을 반복해 견디는 쪽으로 몸의 리듬을 가다듬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존재의 특징은 과시보다 지속, 지배보다 인내에 가까운 생존의 문법으로 읽힙니다. 하드로사루스 풀키, 경쟁 대신 공존을 택한 리듬 같은 캄파니아절의 미국권에서는 아라모사우루스 산줘넨시스와 크리토사우루스 나바조뷰스도 초식의 길을 나란히 걸었습니다. 서로가 같은 식물 자원을 바라보던 순간에도, 이들은 한 평원을 깨뜨리기보다 각자의 동선을 달리하며 자리를 비켜 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물가와 내륙의 미세한 거리, 먹이 선택의 작은 차이가 긴장을 균형으로 바꾸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공존은 충돌의 장면보다, 정교한 간격으로 완성된 느린 합주처럼 느껴집니다.
미래가 채워야 할 페이지
지층에 남은 것은 다섯 번의 흔적이지만, 그것은 부족함이라기보다 아직 닫히지 않은 장면의 여백입니다. 이동의 결을 끝까지 잇기엔 잠든 단락이 많아, 우리는 가능성의 언어로 조심스레 그 뒤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미래의 발굴이 한 조각 더 빛을 얹는 날, 하드로사루스 풀키의 하루는 지금보다 더 선명한 숨결로 돌아올 것입니다.